[정수지의 미술로 보는 마음이야기] 고통을 묻고 살아가는 엄마

가정 내 폭력은 사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만약 가정폭력을 경험하게 됐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2019년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배우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경우 폭력 행동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경우’가 45.6%, ‘자리를 피하거나 집 밖으로 도망간 경우’는 12.5%, ‘주위에 도움을 청한 경우’는 1.0%로 매우 적었다. 몹시 놀라운 사실이었다.


▲ 정수지 미술심리치료연구소 대표


우리는 어릴 적 누군가가 자신을 해하거나 그런 위험이 있을 때는 반드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통계 결과는 이러한 학습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미술치료를 하면서 만났던 30대 여성 또한 비슷한 경우였다.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둔 이 여성은 남편과 비교적 평화로운 가정 생활을 유지해왔다고 했다.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미래를 꿈꿔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 버린 것이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의 언쟁 중에 신체적 폭행을 당하게 된다.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며 무력감을 느끼던 그녀에게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남편의 힘에 완전히 제압당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녀는 ‘자신은 이미 죽었다’ 생각했다며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사건 이후 그녀는 극도의 불안감, 수치심, 무가치함, 우울감 등을 느꼈다고 했다. 우울증을 겪고 있던 그녀가 그린 그림은 매우 무거운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우선 자신의 고통을 묻어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그림을 보면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 듯한 표정의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관 속에 누워있다. 울고 있는 존재를 선으로 덮어보려고 했으나 감추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 위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 미술치료상담자가 실제로 그린 그림.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도 이 여성이 느끼고 있는 복합적인 현실과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이 고통을 안고 죽은 채로 살아가는 엄마는 얼마나 괴로울까? 다행히 이 여성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상담 치료 등을 병행하며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가정폭력이라는 것은 매우 고립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을 시 재발의 위험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겪었을 때에는 어릴 적 나를 가장 아껴주었던 그 누군가가 가르쳐 준 방법처럼 반드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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